필로는 작은 배려에도 깊게 감동을 받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기에는 너무 시시콜콜해서 블로그에 적기도 민망한, 정말 보잘것 없는 말이나 행동에도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나로 하여금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만든다. 지난번 블로그에도 적긴 했지만, 자기가 그냥 지나가면서 했던 "한국 도장" 얘기를 내가 듣고, 생일 선물로 해줘서 정말 폭풍으로 감동했었다.
반대로 나는 정말 무디고, 감정 표현도 잘 하지 않는 극강의 K-장녀 스타일이다. 연애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회사에서도 대인관계나 일 때문에 힘들 때면, 내색을 하기보다는 그냥 묵묵히 참다가 병이 나는 (?) 스타일이었다. 그러다보니 필로의 엄청 적극적인 감정 표현이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텐데 굳이 저렇게 오글거리게 말을 해야하나 싶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로가 출장을 다녀왔는데 반팔을 입고 땡볕 아래서 돌아다녀서인지 양팔이 다 타서 씨뻘개진 채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다 팔이 다 타서 익어간것도 모르고,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며칠동안 출장 때문에 보지 못했으니 오늘은 꼭 봐야겠다며 공항에서 오히려 더 먼 우리집으로 먼저 달려온 게 나는 너무 좋으면서도 화가 났다. 아니 나한테는 맨날 선크림 발라라, 모자써라 하면서 자기는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닌건지..
"아니, 이게 뭐야? 밖에 하루종일 돌아다닐걸 알면 긴팔을 입던지, 아니면 선크림을 바르던지 해야지""Sunblock? Nope, I'm a man, yo""What?"
우리나라 남자들은 부지런히 선크림 잘만 바르고 돌아다니던데, 자긴 남자라서 선크림이 필요없단다.. 하아.. 너무 한숨이 나왔지만 일단 필로를 소파에 앉히고, 냉장고에 있던 오이를 꺼내서 얇게 썰었다. 그리고 일단 열이라도 가라앉혀야겠다며 오이 물기를 뺀 후, 필로의 양팔에 오이를 얹었다."일단 이러고 15분만 있자.. 이거 열 안내려가면 내일 엄청 아플거야, 다음에 또 출장가게 되면, 꼭 긴팔 가져가야돼. 아니면 내가 팔토시라도 하나 사줄테니깐 그거 입고"그런데 내가 폭풍 잔소리를 해서 그런지 필로는 자기 팔에 오이만 계속 쳐다보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던 필로가 입을 뗐다."나 지금 너무 감동받았고, 너무 행복해. 그동안 내 팔이 타던 말던 아무도 관심 없었고 혹시 그렇더라도 이렇게 잔소리해주고 오이도 붙여주는 사람은 없었어. 나 지금 너무 사랑받고, 돌봄 받는 기분이라서 행복해"쫄면할 때 넣으려고 사두었던 냉장고 속 오이 하나에 필로는 정말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또 한번 더 필로한테 반해버린 것 같았다.
좋은 감정은 전파력이 강해서인지 나도 이제 필로처럼 점점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나는 누가 음식을 먼저 떠서 주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필로는 내가 음식을 먼저 떠주거나 물을 주거나 하면 "고마워", "Thank you", "Sweet hon" 이라고 꼭 말을 해준다. 처음엔 굳이 뭐 이런거에 고맙다고 일일이 말을 해야하나 싶었는데, 나도 이젠 필로를 따라서 누가 나에게 어떤 작은 배려를 베풀었을 때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라고 말을 하는게 익숙해졌다. 이젠 그 배려들이 당연한게 아닌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많은 연애를 해본 건 아니지만, 나는 배움이 있는 연애가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배려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필로와의 연애가 참 좋다. 배려는 베풀 때 더 행복해지고, 또 배려를 받았을 땐 그걸 아낌없이 고맙다고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 필로님~ 고마워요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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